얼치기 창작방

호사하는 발

김성조 2008. 6. 9. 23:17

호사하는 발

 

등산을 다녀와서 목욕 후 발을 닦다 보니 발톱이 꽤나 길어 있다

등산화 속의 발톱은 아무 소용도 없는 것

손톱깍이를 찾아 깍으려 하니 새끼 발까락 이란 놈이 딱 달라붙어 날이 들어가지 않아 억지로 벌리려 하는데

이놈 새끼 발가락 하는꼴 좀 보소

영 벌려 주지 않길레 강제로 벌렸더니 이런, 속에서 무좀을 키우고 있더라

“요런 게으런 넘 봤나”

하면서 무좀약 피엠을 찾아 갖다대니 질색을 하며

 

“주인님!

이거 너무 하는것 아닙니까?

왜 그 지독한 약물을 저에게 또 투입 하시는 거죠?

저가 무좀을 키우고 싶어 키웁니까

다 주인이 게을러서 그런 것 아닙니까?

부려 먹었으면 제때 바람을 씌어 주고, 적어도 잠자기 전 이라도 닦아만 줘도 이런일 없을 것 아닙니까

더구나 다른 사람들은 발 맛사지다 모래 찜질이다 하면서 발을 아끼는데

솔직히 주인님은 군대 삼 년 동안 군화 속에 꽁꽁 갇혀두었고,

제대하고 숨좀 쉴려나 했더니 포스코 인가 뭔가 하는 회사에서 또 안전화  속에 땀띠나게 30년을 혹사 시키더니

정년 후 이젠 정말 편하게 쉬려 했는데

무슨 지랄 같은 등산을 한다고 일주일에 한번 씩은 등산화 속에 가두어 전국 산천을 선렵하며 돌 뿌리에 치이고 물 구덩이에 빠지면서 요런 꼴을 만들어 놨잖아요

이제와서 이 못생긴 발까락 타령을 하다니요 해도 너무 합니다”한다

 

허 요놈 봐라

그래도 할 말은 있다고 시부렁 대는구나

 

“그래 너의 말이 영 틀린 건 아니다 만

이 정도는 이 시대에 건강한 사람이면 보편적인 일이지

내가 어릴 때 비록 가난 했었서도 우리 부모가 나를 맨발로 다니며 사금파리며 가시에 발을 베이게 하지 않았고

우리 나이 때 많이들 신어 봤다는 짚세기 를 너는 모르잖니

한양천리 그 껄꺼러운 짚신을 신고 석달 열흘 걷게 하지 않았고

헤진 짚신 사이로 들어오는 오물을 밟게 하지 않았으며

내가 황영조나 이봉주 처럼 달리기를 좋아하여

42.195km 100리 길을 내 몸뚱이를 지고 뛰게 한적 있더냐

군대 3년과 포스코 30년을 군화 속에 가두었다 하는데

그 덕분에 네 놈이 안전 했다는 걸 왜 모르느냐

퇴직 후 등산화 속에 갇히어 산천을 돌아 다녔다 하나

내가 어디 내 마음대로 갔느냐

네놈이 갈 만큼 갔고 네놈이 돌아서면 나 또한 돌아 섰으니

이 어찌 내가 너를 부렸다고 할 것인가

 

세상은 바야흐로 이동의 세월이다

옛날에 석 달 열흘 걸리던 한양을 이제 한 나절이면 당도하니 축지법이 아니라면 가당치나 할 일인가

그런데 그것을 네놈이 할 수 있느냐

내가 요즘 김제와 광양을 일주일에 왕복을 하는데 거리가 무려 400Km 서울만큼 가는 거리다

그런데 네놈 더러 나를 업고 가라 하더냐 끌고 가라 하더냐

네놈이 그 뜨거운 아스팔트길에 한 발자국 이라도 내 딛은 적 있느냐 말이다

너는 가만히 얹혀가지 않느냐

너를 실어다 주는 건 바로 굴러가는 발, 자동차 바퀴다

광양 전주간을 몇 번 이나 굴러야 하는지 알기나 하느냐

타이어  한 바퀴 구르는데 1.5m 이니 400km를 가려면 자그마치 26만7천 바퀴이다

네 놈이 그리 굴렀다면 아마도 황천을 갔어도 벌써 갔을 거다

더구나 그것을 굴려먹으며 알짱거리는 놈이 바로 네놈 아니냐

밟으면 밟는대로 나간다고 내가 그리 금지 시켰는데도 무리하게 밟아

과속 딱지를 끊은 것이 어디 한 두 번 이더냐

그런데도 너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발가락에 무좀 있다고 이리도 투정을 부리다니

너를 다시 짚새기를 신겨 버릴까 보다

 

뭐니 뭐니 해도

세상은 이제 발이 호사하는 세월 이니라”..

 

2008.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