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중국서안(5) 진시왕 지하궁과 병마용

김성조 2010. 9. 19. 14:13

 

고대중국 역사를 대표하는 진시왕 지하궁과 병마용

언제 가보나 했는데 드디어 오늘 세째날에 간다

 

서안(옛장안)은 섬서성의 성도로 5000년의 중국역사 중 절반 이상을 제국의 수도로 기능했던 만큼 중국의 사상과 문화는 서안으로부터 갈라져 다른곳으로 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시아를 횡단하는 길 실크로드의 시작점이기도 하며 진시황,한고조 유방,한무제,측천무후,양귀비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영웅호걸들의 로망이 살아 숨쉬는 곳,

그 문명은 당나라때에 외서 더욱 융성했다

장안에 가면 없는것이 없다던 그 장안이 서안이다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호걸들도 결국 죽는다

11대 왕조가 수천년을 이어갔으나 장안엔 왕의 무덤이야 오죽 많을까 마는 유독 진시왕릉이 유명한 것은 그 규모 때문이기도 하다

불로장수를 바라던 진시황도 결국 50을 못채우고(49) 죽는다

죽어서도 영원히 살고자 지하궁전을 만들었을뿐 아니라 사람을 생매장하고 지하군대도 배치하였다

 

 

 

규모는 실제 궁전과 같은 크기로 짓고 성벽을 쌓고 동서남북 문도 만들었다

그 동문에 해당되는 곳에 실제 크기와 같은 많은 수의 군인과 마차, 창검을 쥐어 세웠으니 바로 병마용이다

그 지하군단은 초나라 항우에게 짓밟혀 매몰되고 만다

매몰된 지하궁은 수천년의 세월이 지나가서 1974년에 처음 발견된다

 

1974년 봄, 섬서성 임동현 사람 양배언․양지발․양전의 등 농민들은 물을 얻기위해 자기들이 대대로 살아온 마을 남쪽 감나무숲 가운데에 관개용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여기서 세계 제8대 기적이라는 진시왕 병마용이 발견되었다.

 

발굴을 시작하였을 때는 성한것이 없었단다

이미 파손되고 수천년후에 세상에 나온 토기는 스스로 무너지고 파손되었다

그래서 세계 각나라 고고학자들이 조각들을 복원하여 13년만에 지금의 모습으로 보여주며

발굴과 복원작업은 지금도 계속 하고있다

 

 

 

특히 진시왕의 지하궁전은 아직 손도 못대고 있다

병마용이 있는 뒷산이 그 무덤인데 기록에 의하면 지하로 지하수층(地下水層)을 3개나 뚫고 내려 갔다 하니 그것을 건드릴 연구가 아직 안되었다는것

그리고 발굴을 시작하면 비바람을 막아줄 지붕을 씌워야 하는데 산 하나를 씌울 지붕을 만들 방법도 아직 없단다

설령 방법이 있어 시작한다 해도 발굴이 되고 공개를 하려면 100년을 잡아야 한다하니...

위 사진은 병마용이 발굴될 당시의 진시왕 무덤으로 추측되는 작은산

 

 

지하궁은 기록에 의해 실제 크기보다 300분의 1로 축소하여 만들어 공개한다

내부 모습은 기록에 근거하고 실제로 내시경을 넣어 관찰을 하였다 한다

 

 

 

지하에 실제로 이런 궁성을 짓고 가운데 무덤을 만들고

성광 밖에 지키는 군대를 만들었다

 

 

 

이젠 발굴된 병마용의 진품을 보러 간다

 

 

갱은 1호에서 3호까지 있는데

1호 갱은 일반 보병이 주축이다

젤앞쪽에 무기도 없이 진열해 있는병사가 총알 아니 활받이라 하겠다

상투를 옆으로 묶은것은 등에 진 화살통에서 화살을 빼기쉽게 하기 위해서란다

 

물론 기마병도 있다

모두 실물 크기이며 현재 얼굴이 확인된 숫자가 6,000여라 하는데 같은 얼굴모습이 없단다

키는 약 1.8M로 키가 크다고...

 

 

목이 없는 것은 파손이 심하여 주인을 찾지 못한것

 

 

2300년 전의 현장에 ^^

 

 

파손이 너무 심하여 복원할 엄두가 안난다

가운데 돌같은 것은 그때 덮은 통나무 인데 이제는 화석이 되었다

 

 

 

 

여기는 3호갱인데 손상이 덜하고 복장이 갑옷인것을 봐서 장교용 막사 즉 지휘부라고 본다

 

 

최초 발굴당시는 색상도 원색으로 나왔는데 24시간내에 탈색이 되었다고..

 

 

말 엉덩이만 나왔는데....

 

 

토기지만 말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다

이사진은 전시용을 복사했음

 

 

 

높은 장교인가 보다

 

 

 

원래 토병에게도 무기가 쥐어젔으나 침입자들이 가져가고 남아 있는것중 하나인데

발굴당시에도 녹이없고 날카롭기가 신문지 10장을 스르륵 베어지더라고

알고보니 크롬도금이 되었다 하는데 그기술은 근대 선진국에서 천년후에나 개발된다

 

 

여긴 2호갱인데 파손이 더욱 심하다

1호가 우군이고, 2호가 좌군, 3호가 지휘부 그러면 중군(또는 예비군)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직 발굴을 못했다고...

 

 

이 인형은 북경올림픽때 만든 것이란다

 

 

진시황 청동마차 (축소판)

 

 

발굴하고 전시를 위해 지붕을 만들고 있는 사진(전시관에서)

 

 

지금의 모습(전시관 사진)

 

이번 여행의 주인공 마누라와 여동생

그외 우정출연 및 나같은 꼽사리로 16명이 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