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캄보디아 (4) 수상촌(水上村) 그리고

김성조 2012. 1. 14. 15:14

 

 

 

 

 

다음날

오늘은 날씨가 추우니 겨울 옷을 꺼내 입으라는 가이드의 말에 의아해 하니

아침기온이 영상 17도 혹한이란다 ㅋ

그러고 보니 거리나 유원지의 현지인들 중 부자들은 털옷을 입고 다니고 있었다

 

 

지금까지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긴 캄보디아의 빛을 보았다면

이제 그 뒤안의 어둠을 보자

솔직히 말 하건데 이건 관광이라며 거들먹거릴(?) 짓이 아니다

유니세프(unicef=유엔 아동기금)나 월드비젼 등과 함께 진솔한 긍휼함을 안고 와야 할 것이다

 

먼저 수상촌

물이 좋아 물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고

물에서 태어난 종족이 또한 아니다

그들도 엄연한 땅을 밟고 살아 왔건만 자기가 살던 땅을 빼앗기고 조국마저 그들을 등지니 오갈 때 없는 난민들이 바다를 향해 탈출하기 위해 타고 갔던 배를 땅 어디에도 정착을 못하고 그대로 물위에 사는 것이다

 

전쟁의 결과는 강자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모든 땅은 권력자들이 차지 한다

땅이 없는 사람은 4모작까지 한다는 쌀 한 톨 얻을 수도 없고

한번 열리면 1년 내내 열린다는 야자수나무에 한번 올라가 보지 못하고

원숭이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는 바나나도 마음껏 먹을 수가 없다

 

 

 

우리가 캄보디아 입국시 하늘에서 내려다 본 그 호수

아니 물에 잠긴 마을이 바로 톤레샵 호수다

길이 100km, 너비 36km, 건기시의 수심 1m, 우기시의 수심 12m,

우기에는 한국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넓이와 비슷하고, 건기 때 라도 그 유역면적이 서울시의 두 배나 된다고

그러나 호수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나무가 자라고 있으므로 하늘에 보면 호수인지 물에 잠긴 들판인지 구분이 안된다.

그래서 위성사진에도 그 유역이 분명하지 않다

 

 

 

 

 

레샵 호수는 호수라기 보다 오히려 큰 늪이다

호수의 상당한 부문을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인들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자 생명줄 이기도 하단다.

한국의 연간 어획고가 약 40만 톤인데 비해 캄보디아 인들이 톤레삽 호수에서 잡아들이는 물고기의 양은 연간 1백만 톤이라고 한다.

톤레삽 호수에는 800여종의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으며 캄보디아 면적의 15%를 차지하면서 그 다양한 식물 및 어류를 통해 캄보디아인에게 60%이상의 단백질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고

 

 

 

 

현재 상주 인구가 약 10만 명 이라지만 정확한 통계가 없다는 것

이 가운데 캄보디아 현지인이 절반이고 나머지는 멸망한 월남 피난민들 이란다

땅을 밟지 않은 그들을 국가에서 관리해 주지 않아 학교나 기타 정부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

다만 유엔 이나 각 나라 구호단체들의 도움으로 학교등을 자체적으로 세우고 있다고

그것도 물위에 말이다

 

 

 

 

 

 

 

사람이 사는 곳엔 사람이 필요한 것들은 있어야 하는 법

그래서 슈퍼마켓은 물론이요 주유소 수리소등 공장도 있다. 물론 물위에

아 그리고 교회나 절은 당연히 따라 오는 법….

가난 할 수록 믿음이 강하지요

 

 

 

 

그런데 이곳을 누가 관광자원화 시켰는지 모르지만

유람선 선착장을 만들고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최근에 만든 것 같은 선착장 근처엔 관련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는데

한국 모기업이 손을 대고 있다는 가이드 설명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 실루렛 사진은 예술사진이 아니다

이곳이 관광명소가 되면서 유람선을 운전하는 새로운 직업이 생겼는데 이 아이는 보조이다

배가 선착장의 좁은 곳을 빠져나오도록 장대로 밀어 내고있다

이들은 배가 가동을 시작하면 손님들에게 안마 서비스 등을 하며 용돈을 번다

물론 물의 아이들이 아니고 뭍의 아이들이다

 

 

 

 

 

관광 수입의 혜택이 과연 이들 수상인들 에게 얼마나 돌아가는지는 모르지만

유람선 가까이 까지 온 가족이 조각배와 심지어 양푼대야를 타며 물건 팔기에 혈안이 되는 풍경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약은 관광객들은 그들에게 과일 하나 사주기 않고 카메라만 들이댄다

 

 

 

 

정작 구매는 한국교포가 운영하는 대형 매장에서 기념품 및 음료를 사도록 주선했다

다 함께 먹고 살자고 하는 짓들이겠지만...

 

 

 

가이드 신씨가 올바른 가이드를 하려면 이들의 생활에 익숙해야 한다 싶어서

이들 가옥에 민박을 3일 하기로 하였는데

첫날에 뒤 볼일이 생겨 화장실이 어딧냐고 물었더니 배 난간에서 호수로 떨어 트리란다

근처엔 적당한 숲도 없고 사방이 물이므로 할 수 없이 난간으로 가보니 건너편 집의 아저씨가 태연하게 볼일을 보면서 웃으며 인사를 하더란다

민생고 중에 배설민생고가 좀 급하냐 할 수 없이 엉덩이를 까고 앉았다고

그런데 문제는 점심시간에 찾아 왔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점심을 먹자고 채소를 호수의 물을 퍼 올려 씻어서 쌈을 싸 먹으란다

그물이 어떤 물이냐 방금 옆집 아저씨와 본인이 마주보고 앉아 퐁당 퐁당돌을 던진 곳이 아니냐

그렇다고 이 물이 흘러가는 물도 아니요 (물론 아주 서서히 흘러서 나간다)

희석이 되었으면 얼마나 되었을까 무려 10만명 분이 매일 나올 것인데

신씨가 먹기를 주저 하니 인심 좋은 아주머니께서 쌈을 싸서 입안에 쑥 넣어 주는데

얼른 삼켰다고

토해 낼 수도 없어 맛있다고 그랬더니 또 넣어 주는데..

그러다 보니 진짜로 맛이 있어 먹긴 잘 먹었는데 다음이 걱정이 되어 3일 계획을 1박으로 끝내고 탈출을 했단다.

그런데 호수물이 정말 오염되었을까? 아니라는 것

이유는 나무와 각종 수생동식물들이 정화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볼일을 보면 각종 고기들이 가두리 양식장 먹이 줄 때처럼 달려 든다는데 안 봤다고 거짓말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제주도에 똥돼지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렇기도 하지 싶다ㅎㅎ

 

 

 

 

호수의 선착장 까지 오갈 때 먼지나는 길 옆으로 도로와 맞닿아 있는 반 수상가옥들이 있다

집은 얕은 호수에 긴 기둥을 박고 출렁다리 같은 나무다리를 이용하여 출입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집집마다 부처님 모시는 작은 법당은 두고 있었다

집 앞에 놓여진 큰 항아리는 신부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오는 것인데 두 개가 있는 집은 부인이 둘이라는 뜻이라고..

 

 

 

일반가옥

 

 

 

 

다음으로 땅을 가지고 있는 중산층집을 가본다

현지인으로 가이드 보조업을 하는데 이곳에서는 고급 일자리라 한다

집 모양이야 어쨌던 땅이 있다는 것 만으로 부유층이라고

우기에 대비하여 집을 누각현상으로 기둥을 높이 세우는데 사각모양인 것은 뱀이 타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함 이란다

땅이 있으니 야자와 바나나 나무도 심을 수 있다

텔레비전이 있다는 건 우리들 어릴 때 흑백TV 있던 그런 집과 같을지

 

 

 

작은 킬링필드

 

도시 어디에도 절이 많다

우리나라의 어디에도 교회가 있드시,

이곳 한 절을 방문 하였는데 해골을 모아둔 곳이 있었다

절터를 파다가 집단 학살된 곳이 나왔다고

영화에서 본 그 킬링필드는 수도 프놈펜 이고 여기는 작은 킬링필드 라 한다고

절에서 그들의 영혼을 빌어 준단다

 

 

 

 

 

그런데 킬링필드의 주역인 크메르루즈군 출신들이 지금 사회의 중추를 이루고 있으니 감히 누구도 과거청산은 커녕 시사화 하는 것을 못한다고..

우리와 함께 다니는 버스기사나  보조 가이드 중에도 그들의 가족 중에 심지어 본인조차 한때 그 일을 한 사람이 있을 것이니 너무 표시나게 묻지  말라 한다

 

세월이 가서 정말 이 나라가 잘 살고 민주화가 된다면 한번은 거론 될 것이다

우리는 일제 청산이 아직도 안되고 있지만….

 

사진의 황갈색의 해골은 임산부라 한는데... 참으로

 

 

 

서 바라이 인공호수

 

또 하나의 호수 서바라이 호수는 인공 호수이다

시엠립 관광지도에 위 왼쪽에  보이는 직사각형의 모양이 바로 이 호수다

앙코르 왕조시절 홍수대비와 100만명의 식용수 공급을 위해 사람이 파놓은 것이라 하는데

서바라이는 앙코르 제국 시대 수리야 바르만 2세가 만든 거대한 인공 호수로 둘레가 (남북2.2km 동서 8km)에 달하는 큰 규모다.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유원지이기도 하다.

그 시대에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식수와 농업용수를 위해 사람들이 기계도 없던 시절 삽으로 직접 파서 만든 호수라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는지 상상이 안갈 정도다.

특히 우기 때 내린 비를 모아두었다가 건기 때 관개해서 농사를 지었다 한다.

지금은 그런 기능보다 관광용으로 사용한다.

앙코르제국 당시에는 관개를 잘해서 대 제국을 유지했다는데, 지금의 캄보디아보다 오히려 훨씬 나았을 것이다.

 

 

 

여기는 보존할 만한 유적이 없는지 입장료나 통제하는 것이 없어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찾는다

그래서 각종 먹걸이나 가게들이 많다

물론 예의 그 아이들의 "원달라" 아우성은 여전 하고.. 

 

 

이상 캄보디아 일정을 여기서 끝내고

저녁에 베트남 하노이로 가기위해 비행장을 향하는 차안에서 가이드 신씨가 마무리를 하면서

여러분 캄보디아 잘 봤지요

모두 ~”

느낌이 어때요?” 

침묵이 흐른다

왜요 가이드가 맘에 안들었는가요?”

아니오 너무 잘하셨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다른 것은 기억에 안나요

 잔돈을 많이 갖고 오지않은 것이 맘에 걸려요"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의 짧은 생각일 뿐 캄보디아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우리 한국 보다 훨씬 높으며,

세계에서 여섯 번 째라고 한다.

물론 문명을 알기 전의 일일 것이다

천 여 년 전 찬란한 문화를 일으켜 불멸의 유적을 남겨놓은 크메르 민족,

한 때는 우리 한국보다 잘 살았던 나라,

내전으로 인해 수많은 국민들이 목숨을 잃고 불구가 되었으며,

현재는 다른 나라의 투자에 힘입어 새롭게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캄보디아지만

그들에게는 아직도 천혜의 부존자원과 복된 앞날에 대한 희망이 있다고 한다.

자원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국가의 중심인 젊은이가 많다는 것이다.

 

전후 우리들이 그랬드시 그들도 올바른 지도자를 만나 몸과 마음이 모두 행복한 삶을 살기 바라며 

캄보디아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시엠립 공항에서 베트남 하노이로 가는 베트남 항공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이후 베트남의 여행은 하노이와 하롱베이 인데

그냥 즐기는 관광이라서 더 이상 여행기를 쓰지 읺으련다..

 

 

다만 사진만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