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일기
무소유 따라하기 2
고추모종 소유가 있은 지 3주가 지났다
매일 바라보지만 크는 것 같지는 않더니 그새 잎이 두어 장 새로 올라왔다
저것들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인데 많이 허약해 보인다
어린 딸이 자라서 아이를 낳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 싶으니 짠한 생각이 든다
그래 우선 잘 먹고 튼튼하게 커야 열매를 달던 새끼를 낳을 거 아닌가 싶어
거름을 무엇으로 해야 하나 고민이 생겼다
독한 비료를 바로 쓰기에는 허약해 보이고 이왕이면 친환경이라야지 싶지만 이건 또 어디서 구하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만드는 법이 어떻고 판매가 어떻고 여기 저기서 자기가 최고라고 떠드는데 겨우 고추 두 포기로 상담하기도 그래서 직접 찾기로 헸다
농약사에 가서 고추에 줄 물비료 같은 것 없느냐 하니 몇 평이나 뿌릴 거냐고
단 두 포기라 하기도 뭣하여 화분에 몇 포기 심었다 하니
그 정도면 화원에 가서 구입하라 한다
동네 꽃집에는 마침 어버이날을 앞에 두고 꽃 판매에 정신이 없는 틈에 원예용 액상 영양제를 구입했다
주사기 형태로 곶아 두면 된다 하였다
어린아이 분유 먹이는 마음으로 영양제를 꽂고 잎을 살펴보니 거기가 어디라고 진딧물이 붙어있다
이 또한 딸아이 머릿니 잡아주는 마음으로 털어주었다 만
이것이 무슨 위선적인 행위 인가 싶다
이리 정성 들였다 자위하며 열매가 열리면 어쩔건데
댕강 꺽어 된장에 찍어 와싹 씹어먹을 생각이 아닌가
아니면 더 커지면 칼로 배를 가르거나 잘라 끓는 된장국에 던져 넣거나
설령 붉게 익을 때까지 둔다 한들 그냥 꽃처럼 바라보지는 않을 터
찧고 갈아 아예 가루를 내어 털어 먹을 건 뻔한 일인데
무슨 정성이 어쩌고 자식 같은 마음이 어떻고 하며 위선인가
수확 많이 내어 친구에게 자랑도 하고 내입에 한번이라도 더 넣고 싶은 욕심일 뿐이지
그렇다고 내버려두려니 이 또한 책임 없는 짓이고
아직까지 멀찍이서 어찌하나 두고 보고 있는 아내 눈치도 있는
이래 저래 번뇌만 늘어갈 뿐이다
게으름을 피우려면 확실히 게을러 하고 말지
20.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