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치기 창작방

스뎅그릇

김성조 2025. 6. 5. 10:29

스뎅그릇 

 

신문에 끼워 온 광고지에 그릇 가게가 망해서 정리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아내에게 슬쩍 보여주며 “그릇 가게 떨이행사한다네가볼까?

 “뭐 그릇 없어 밥 못 먹냐.

하며 시큰둥한 표정이다.

 “아니 뭐 필요한 거나 좋은 거 있을지 알아?

 “뭐가 필요한데그럼 혼자 가 보시던지.

사실 나도 그릇점에 가고 싶을 만치 부엌살림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얼 사 모으고 하는 쪽으로는 취미도 없다.

그러나 내가 그릇이라는 단어에 이리 꽂히는 것은

지난날 아내가 푸념같이 했던 말 한 마디가 내 가슴에 꽂혀 사건 현장 지문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신혼 초 시골 본가에 있을 때 어느 해 명절

차례에 쓸 그릇을 준비하던 아내는 닦던 수세미를 툭 던지면서

“아찬장에 그릇 질 대로 소복소복 쌓아놓고장농에 철 따라 이불 차곡차곡 넣어두면 소원이 없겠다.

한숨 썩어 툭 던진다.

물론 그릇 쌓아둘 찬장도 없었고 이불 쟁여 둘 농도 없었을 때였다.

아내가 어떤 표정인지 보지도 않고 난 딴청을 했었지.

 

그 후 내가 다른 도시에 있는 회사에 취직하면서 분가하여 단칸방에 살면서는 음식은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 먹고 밥상은 세 다리 알미늄상에서 아이 둘과 함께 먹었으며,

이불은 카시미론 이불 한 채로 덮고 앉은뱅이책상에 올려 두는 삶이었지만

아내는 그때 푸념처럼 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이웃들과 그 당시 유행인 스뎅그릇세트 타기 계를 부었다.

물론 붓는 돈을 적게 들이려고 뒷번호를 선호하였다.

돈도 돈이지만 당장 우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시골 본가에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런 식으로 선풍기나 밥통 등 가전제품은 물론 이불도 구입하여 살림을 늘려가는 재미로 아내의 얼굴은 늘 희망이 차 있었다.

그런데열다섯이 함께 한 계가 열 번째에서 사단이  나고 말았다.

계주가 그릇계 말고도 가전제품이나 금반지계 등을 모집하여 업이 확장되어

그중 한 계원이 금반지를 타 먹고 곗돈을 못 붙는 사고가 터지고 만 것이 연쇄적으로 다른 계도 타격을 입어 감당을 못한 계주는 야반도주를 하고 만 것이다.

“내 팔자에 무신!

딱 한 마디 하고 아내는 다시는 스뎅그릇세트 말은 하지도 않았다.

지금 같으면 사기범이 어떻고 고소를 하니 어쩌니 하겠지만 그 시절엔 모두 모여 웅성거림으로 사건은 잊혀져 갔다.

 

그 후 그릇 유행도 바뀌어 스테인레스그릇 세트는 한 번도 찬장에 놓인 적이 없었고 싸고 질 좋은 그릇도 많이 나와 계나 적금 없이도 그릇 세트는 채울 수 있었다.

다만 스테인레스로 된 주전자와 회사에서 준 냄비 세트그리고 나물무침이나 비빔밥 만들 때만 쓰는 큰 용기 정도만 있을 뿐이다.

 

지금 아내 가슴엔 다 잊혀진 스뎅그릇이겠지만 내 가슴엔 영원히 녹쓸지 않는 스테인레스처럼 무겁게 남아 있는 건 왜일까?

그 채워보지 못한 아내의 찬장에 내가 뭘 어떻게 채워 줘야 할지 모르는 나는 오늘도 그저 근처만 서성일 뿐이다.

 

광고지를 버리려다가 멋진 와인잔 사진이 보여 다시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