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들의 고향(진안 팔공산)
2006.3.12
산자분수령(山自分水領 :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
산행시 마다 항상 들어왔던 단어
백두산에서 이어오는 산,산,산들
난 외우지도 못하고 또 순서 나열도 못하지만 분명 산은 이어져 왔다고..
대간 과 정맥, 그리고 기맥등..
우리 의장님 산행시 마다 나오는 오줌의 방향에 대해서…
뭔 오줌이 땅속에 스며들지 낙동강으로 가고 섬진강으로 가느냐구
시큰둥 했었는데
그걸 시험해 보려고 소백산 바람세찬 능선에서 한강에다 갈겼는데 죄다 낙동강
으로 아니 내 바지가랭이 에다 뭍혀버린 안타가움도 있었지^^
오늘 드디어 강의 발원지에 간다
그것도 두강이(금강,섬진강) 시작 되는 곳 그야말로 강들의 고향!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명이 수분리(水分) 물을 나누다. 기가 막힌다
수분리가 있는 주산 팔공산(1151)
지난주 대구 팔공산과 비교하듯 진안 팔공산 기획 자체가 예술이다 ㅎㅎ
대구 팔공산이 불교의 성지 라면, 여기는 강의 성지라 해도 손색이 없다
산행시작 2년 만에 이제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나의 강 발원지만 해도 대단한데 두 강의 발원지라니..
흥분이 되어 잠이 다 설쳐진다.
마침 꽃샘 추위에다 황사 예보까지 있고, 또한 지난주 대구 팔공산의 고생이
떠올라 팔공산의 팔자도 싫다고 했을까 참여 인원이 27명,
물론 명성이 덜한 산행은 신청이 덜한 사례가 많긴 하지만..
킬리 오기가 발동
30명 미달이면 저녁대접을 하겠노라고(설마 30명 미달이야 될라구..) 회칙에도
없는 농담삼아 한말을 이왕 적자 본 김에 실행 하겠다고 선언 하고 만다
그 의장에 그 총무라
우리 총무님 “야호”
의장님 기가 막혀 “뭔 총무가 누구 편이여?? ㅎㅎㅎ”
정말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풍경이 아닌가
나중에 하산이 늦어 실행을 못하더라도 기분들은 모두 좋다
아니면 막걸리도 내가 사지 뭐 하는 기분 이었다.
순천에서 07:00 출발 후 임실군 오수에서 13번 국도를 들어서 비행기재를 지나
차 고개에 도착한 시각이 8시40분.
계획에 있었던 수분리 들머리를 생략하여 아쉬웠지만 돌아올 때 들르기로 하고
바로 팔공산으로 오름.
날시가 제법 쌀쌀하여 땀도 안나고, 인원이 단촐 한데다, 산길도 흙산 이라서 진행속도상당히 빨랐다.
합미 (合米)성은 후백제의 것이라는데 군량미를 모아 두었다는 뜻이란다
정상 도착이 10시50
정상아래 바람 어지가 있어 에라 여기서 점심먹자 하고 펼쳤다
그래야 저녁이 맛있다나^^
아마 산행중 가장 빠른 점심이 아닌가 싶다.
이후 진행은 8킬로미터 더 진행 하지만 돌뿌리 하나없는 흙길이고 가는 방향이
북쪽이라 양지는 말랐고 음지는 얼어있어 대구 팔공산의 그 진저리 나는 길은
없었다.
산맥을 가로 질러가는 것을 실감이나 하듯 왼발은 섬진강 방향 오른발은 금강을
넘나드며 서구이재(해발 850m) 오구치등 고개를 넘어 와룡산 휴양림으로 내려온다
약 13km를 행군하면서 5시간 소요라니 정말 멋진 산행 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어진 코스는 논개를 모셔논 의암사
논개는 분명 기생출신이 아님
논개의 사주 4갑술, 그래서 개술(戌)이라고 개자를 붙혔다함)
의암사는 지방기념물 제 46호로, 장수 현감 정주석이 주(朱)논개의 충절을 찬양하며 장수 탄생일을 기리기 위하여 1846년 논개 생장향수명비를 세운 후, 1955년에 군민들의 성금으로 남산에 사당을 건립 하였으며, 1974년에 현 위치로 옮겨왔다 한다.
경내에는 "矗石義妓論介生長鄕竪名碑(촉석의기논개생장향수명비)"가 있고,
"의암사"라는 현판이 걸린 사당에는 논개의 영정(김은호 화백 작)이 있으며, 외삼문과 내삼문, 충의문이 차례로 있다.
3년전 방문시에는기념관에 약간의 논개의 유품과 남편 최경회 장군의 유품이
조금씩 진열 되어 있어조금 초라 하였는데 지금은 많은 시각적 자료를 만들고
연혁표도 제시 하는등 볼거리를 주었다
논개는 선조 26년(1593년) 임진왜란시 왜군이 진주성을 점령, 남편 최경회(병마절도사)
김천일, 고종후 장군 등이 순절하자, 남편의 원수를 갚고 설욕하고자,
촉석루에서 벌어진 왜군 승전 잔치에 기생을 가장하고 참석하였다.
주흥에 도취된 왜장을 남강가 바위로 유인, 그의 허리를 껴안고 함께 강속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음 다 아는 얘기
당시 논개의 나이는 19세였다. 조정에서는 그녀의 순절을 높이 찬양하며,
예문관으로부터 의암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진주 촉석루 곁에 사액 정문을 지어
그 넋을 위로, 추모하게 하였고, 투신한 바위를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1955년
장수에 사당을 지어 "의암사"라 명하고, 논개의 영정을 모셨으며, 매년 음력 9월
3일 주(朱)논개제에는 각종 문화행사가 치뤄진다.
지금까지 기생으로(아마도 일제 영향인듯) 알고 의기니,관기니 하고 불렀지만
논개는 분명 기생이 아니다.
기생이던 아니던 간에 아녀자로써 구국의 일념으로 몸을 바쳤는데..
오늘날 삼일절에 고관의 골프가 뉴스 제공자의 흥미거리로 떠오르는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의암사에서 바라본 팔공산
와룡산 휴양림의 방갈로:여름엔 끝내주겠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가?
돌아오는 길에 수분치에서 들리는 것을 지나쳐 아쉬웠지만 다음에 따로 오기로 마음 먹고, 약속의 만찬장에 도착, 신난는 뒷풀이가 있었던 하루. 킬리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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