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치기 창작방

인절미

김성조 2008. 1. 17. 20:39

여든 여덟의 손길로 정성스럽게 태어난 몸을

다시 목욕하고 가마솥에 찜질 시키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각 마을의 여러 선산에는 시제(묘사)행렬이  줄을 잇는다.  우리집은 선산이 거창에

있고, 아버님이 안계셔서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보통 시제 때는 가까운 일가 친척이 다 모인다.  묘사를

지내게  되면 알게 모르게 (일부러 라도) "어느 선산 묘에  누가 묘사 지낸다" 라고  다 알게 된다.

"내일 진등에  노리실 파평윤씨 묘사 지낸다더라" 라고  말이 좍 퍼지면 그날 맞춰서 마을 애들이 다 모인

다.  심지어  언제 누가 "댕꼴"서 지내고  언제  "쇠꼴"에서 지내고  누구네는 멀리 "웃메나뭇골"에서 지낸

다  라고 소문이  난다.

 

묘사때는  어른들은 두루마기  복장에  음식 바구니 짊어지고  차례로  시제를  지낸 후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그때  따라간 우리 꼬맹이 들에게 까지  음식이  분배되는 데  "종류별로  조금씩" 이  원칙이다.

또한 "두당 같은 량"이  나누어 져야  공평하다.  그래서 형제가 많으면 같이 간다. 음식을 보면  보통

"시루떡 한두장, 밤 한톨, 대추 한알, 나물전 한두장, 돼지 수육 한두점, 오징어 말이 한조각,등등' 이다.

재수 좋으면 "연시"도 하나 얻을 수 있고...  물론  멀리 있는 산소에  동행자가  적으면  나누어 받는 량

이  많아진다.  진짜 어릴 때 ( 삼학년 이전이었을 게다)는 한해 예닐곱번  묘사떡 얻으러 간 것 같다.

어릴 때는 야산도  매우 힘든, 멀고 험한 산길이었는 데도  불구하고  잘도 따라 다녔다.

 

묘사 떡이  작거나 음식이  조금 분배되면  우리들 끼리  산을 내려오면서  어른들을 놀린다.  주로 옆마을

사람인 경우에...  학교 뒤에  있는  진등에  "윤가네 묘"가  십여개  있는 데  가까우니까  마을 애들이

거의 다 올라가고,  음식 분배량이  작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어린 소견에  어른들 많이 먹을려고

조금 준다고  생각하고는  "윤돼지  배 불러라!  만이 쳐 무그라!" 하며  소리지르며  산을 내려오기도 했다. 

그당시 선산이  보통 이웃마을에  많았는 데  묘사 후 음식을 나눠 먹음으로써  평소  선산의 묘(봉분)에

대해 해꼬지를  하지못하도록 예방한 것 같다.

 

손수건 같은 "밥수건(보자기)"에  떡이랑 음식을 담아  조금 먹고  남겨  할머니께 드리기도 했었다.

명절때 아니면 떡 구경하기도 힘든 시절이었으므로...  지금은  간단히 성묘 후 가족끼리 술 한잔하고

헤어 지겠지.  묘사떡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여게 사까리 넣었나? "

'탕!탕!탕!'

발동기 소리에 크게 고함을 지르는 염씨 아저씨는

머리에 두른 수건을 벗어 탁탁 털어 땀을 한번 닦는다

"언제요~ 그냥 뽀아 주소. 꾸분떡 할꺼라예"

큰 다라이에 불린 쌀을 이고 온 순이는

손사레를 치면서 같이 큰 소리로 외친다

 

'딸가닥 딸가닥'

피데 돌아가는 소리와

"끼익 끼익"

기어 돌아가는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던 나도

두줄로 쉬임 없이 나오는 떡가레 보는데 정신이 팔렸다

방앗간 아지매는 솜씨 좋게도 똑 같은 길이로 번개같이 짜르면서

그사이 자투리를 뚝 잘라 얼른 입에 넣고 있다

 

섣달 그믐

시골동네 조그만 방앗간은

떡가루 빻는 다라이가 줄을 길게 늘어서고

엄마나 누나를 따라온 꼬맹이들의 더 없이 신난다

 

동네 어귀 신작로에

버스가 섰다가 떠나면 누군가 가방을 메고 마을로 들어온다

"저게 누고?"

"아이고 금자 오네"

"설 이라꼬 오는가베"

"야야 상식아 저기 너거 누부 아이가?"

상식이는

"아지매 우리꺼 좀 봐주이소"

금새 동구밖으로 뛰어 간다

"누부야~~"

 

그때

그 쌀가루로 첫 솥에 구운 맨떡이

지금의 피자와 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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