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바리들의 추억
여자들이 남자친구 사이에서 제일 싫어하는 대화는 군대와 축구이야기라 한다
그 중 에서도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라나?
요즘이야 여성들도 스포츠에 관심이 높아져 야구나 축구는 이제 상식이다
그렇지만 군대 이야기 만큼은 아직도 남성들의 성역이다
우리나라 전방의 양대 산맥인 동부전선과 서부전선
이른바 101보냐 103보냐 에 따라 많은 신병들과 가족들이 마음을 졸였다
쉽게 말하면 101보충대는 의정부에 있어 즉 서부전선(문산,의정부,포천 등)에 배속되고
103보충대는 원주에 있어 동부전선의 인제군 원통리 방면으로 배속 되었는데
그래서 “인제 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라는 노래도 나왔다^^
오늘 우리 산모임에서 가는 포천의 명성산과 산정호수는 많은 군인들의 추억이 쌓인 곳이다
내가 근무하던(71년) 00군단 사령부는 당시 포천읍에 있었는데
나의 보직이 예하사단에 비밀문서를 전달하는 군단전령이 이었다
매일 아침 문서배낭을 지프차에 싣고 5개 예하사단과 직할대를 한 바퀴 도는 것인데
그 구역이 서울 쪽으로는 의정부 창동 까지 이고, 서북쪽으로는 문산 법원리 이며
북쪽으로는 전곡까지였다
산정호수가 있는 일동 이동은 다른 군단 지역이라 아쉽게도 올라가 보지 못했다
그래서 제대 후 아내와 꼭 한번 오리라고
천리 먼길을 버스 몇 번 갈아타고 면회 왔던 지금의(?) 아내와 약속도 했었다
그 약속이 40년 만에 이루어진다
오늘 우리는 가을을 맞으러 멀리 포천과 철원 사이에 있는 명성산으로 간다
순천서 새벽 3시에 출발한 버스는 밤 고속도로를 달려 올라오니 대전 지나서야 먼동이 튼다
차창으로 보이는 새벽하늘은 푸르딩딩한 화판에 걸레스님 중광이 휘리릭 그린 것 같은 새털구름이 한가롭게 떠 있고
차창 도로가엔 아침이슬 맞은 코스모스와 들국화들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 정신이 없는 듯 멀뚱멀뚱 보고만 있다
새벽의 고속도로를 쾌적하게 달려
휴게소에서 먹는 아침식사로서의 추어탕은 정말 기가 막힌 메뉴 였다
수고하시는 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의정부 IC를 벗어나니 좌현으로 북한산 백운봉과 도봉산 자운봉이 아침 햇볕을 받아 위용도 당당하게 맞이 한다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잇는 43호 국도는 예전엔 2처선으로
꼬불꼬불 축석고개를 올라서면
군인 화이바를 눈이 안 보이도록 눌러선 헌병들의 검문을 반드시 받고 포천으로 들어가는데 가을의 이 길은 코스모스길로 명성이 났었다
축석고개에서 포천까지 백리 길에 이어지는 코스모스 길은 축제를 열 정도였다
박두진 모윤숙 등 당대의 대가들이 코스모스길 문학산책을 하는 모습을 본 일도 있다
10월 초
딱 이맘때 인가 보다
아침 전령차를 타고 나서면 길섶에 핀 코스모스들이 이슬에 갖 세수한 얼굴이 마르지도 않은 체
아침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보석이 따로 없었다
당시 국도변의 코스모스는 군(郡)에서 관리 하였므로 봄이면 학생들이 심고
마을 마다 구역을 나누어 가꾸니 엄청 충실하여 앞문이 없는 지프차를 타고 가면서 손을 내밀면
손끝에 사르르 스치는 꽃의 촉감에 눈을 감고 느끼다가 군단사령부로 들어오는 별을 단 장군차에 경례를 못해 혼쭐이 나기도 했다 ^^
40개 성상이 지난 그 길은 이제 4~6차선으로 확장되고
도시간의 경계도 모호하게 모두 도시화 되어
코스모스 피던 도로변은 가구 및 아웃도어 할인매장으로 매워져 있다
내가 근무했던 군부대 장소는 어떤 신학대학으로 바뀌었고
아내가 면회와서 기다리던 정문 앞 다방은 도로에 헐려 사라지고 자동차 수리소가 들어서 있다
다만 옛 사령부 뒤의 왕방산(737m) 만이 옛모습을 잃지 않고 굽어보고 있다
삼팔선을 넘어가는 휴게소에서 잠시 군바리 추억을 한번 더 떠 올린 후
본격적 산정호수 길로 접어드는데
종주팀을 위해 지도상에 나와있는 도로를 따라 들어가니 이건 완전히 비포장 도로에다
도로의 훼손이 너무 심하여 버스가 back으로 돌아 나온다
미안해 죽을 맛이다
겨우 돌아 나와 호수쪽으로 들어가니
이젠 관광객들 차량에 밀려 우리가 주차장에 도달했을 땐 이미 11시가 훨씬 넘었다
산정호수는 농업용수를 이용하기 위한 인공호수이다
호수면적 약 0.024㎢으로 큰 편은 아니다. (약 7,300평)
서울에서 약 72km 거리에 있으며, 영북농지개량조합(永北農地改良組合)의 관개용 저수지로서
1925년에 축조되었다 하니 상당히 오래된 저수지이다.
산중에 묻혀 있는 우물 같은 호수라는 뜻으로 산정(山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명성산(鳴聲山)은 이 호수를 안고 있는데, 산 이름은 고려 건국 때 왕건(王建)에게 쫓긴 궁예(弓裔)의
말년을 슬퍼하는 산새나 바위들이 들이 울었다 하여 붙여진 것이라 한다.
이 산의 남북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암봉과 절벽, 초원 등이 다양하게 전개되며 좌우 시야가 탁 트인 조망이 장쾌하다.
삼각봉 동쪽 분지의 화전민터 일대는 억새풀이 가득한 초원지대로 가을 억새로 명성(名聲)이 나 있다
그러나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특히 멀리 순천에서 단순히 억새 보러 명성산 까지 갈 만한 전국적인 억새명산은 사실 아니다.
우리 같은 남도 사람들이야 전국 최고의 장흥 천관산, 창녕의 화황산 등 억새산은 많다
다만 산모임에서 같은 곳 보다 새로운 곳 또는 평소 가기 힘든 곳은 이렇게 단체로 갈 때 가보는 것도 좋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나는 순전히 옛추억 때문이기도 함을 여기서 고백 드린다.ㅎ
산의 동쪽 계곡을 타고 오르는 길은 폭포도 만날 수 있고
경사가 완만하여 1시간여 만에 억새능선에 도달한다
계곡엔 10월 연휴를 산과 함께 가을을 느끼며 보내려는 등산객들로 계곡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하기야 그 많은 서울 사람들이 0.1%만 와도 만 명이 넘을 것이다
억새능선에서 내려오는 길을 자인사 쪽으로 내려왔는데
완전히 돌밭에 경사가 심하여 무릅이 심히 고생을 하였다
호수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보트· 수상스키를 즐기고,
겨울은 얼음 썰매장으로 수도권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95년 이 일대에 온천이 개발되었다 한다
오늘도 보니 많은 가족과 연인들이 호수에서 오릿배를 타고 즐긴다
우리들은 당연 포천 막걸리를 들며 긴 여행의 의미를 부여한다
밀리는 서울행 하행선은 도시의 간판이 볼거리..^^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되어 무박 2일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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