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오래된 이야기 '잠수 자전거'

김성조 2014. 8. 4. 21:21

 

<1980년 폭우로 물이 넘실대는 포항 형산강과 잠긴 마을들

  강 수면이 강밖의 물보다 높다>

 

 

<자전거로 출 퇴근 하는 초창기 포스코 직원들>

 

 

잠수 자전거

1980년 포항의 어느 여름날,

 

 

형산강이 넘실대고 있었다

황톳빛 가래를 뱉어 내려고 둑을 향해 혀를 낼름 거리고 있었다

강 수면 보다 저지대의 강둑아래 스레이트 지붕들이 모여있는 동네의 길은 이미 갇힌 물에 잠기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피신 하라는 이장의 마이크는 쉰내가 났다

 

저녁 9시경

여보 출근 해야지 어여 가소

당신도 같이 빨리 피난 가

난 주인 아줌마 따라 갈 터이니 걱정말고 어여 회사나 가소

 

안전화를 비닐봉지의 담아 자전거에 걸고

판초우의를 둘러쓰고 저전거를 세우니 바퀴 반은 물에 잠겨 있다

마을 안길에서 큰 길로 이어지는 농로는 이미 물에 잠기기 시작하여

논 가운데 농로따라 50미터 마다 서있는 전봇대를 기준 잡아 자전거가 끄는 대로 큰길로 나섰다

큰 빗줄기는 멎었지만 비가 완전히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형산강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보는 강물은 제강공장 굴뚝의 불빛을 받아

노도와 같이 시뻘건 피를 우뢰 같이 굴리고 있었다

 

출근을 하니 야근 근무에 결근자는 하나도 없었다

시내 오거리 쪽도 물이 많이 잠겼다 한다

모두 자전거가 끌어주는 대로 용케 회사로 왔단다

'아내는 피신을 했을까?'

'추울 턴데 마을에서 이불은 줄까?'

비는 멎었는가 보는데 강물은 상류쪽 에서 유입되는 수량으로 더욱 불어 날 것이다

전화기가 없던 시절 소식을 받을 일은 애당초 없다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니 날은 시침이를 뚝 떼고 청명하게 맑았다

서둘러 자전거 패달을 밟아 형산강 다리 위에서 보니 강둑이 터졌거나 그런 사고는 없어 다소 안심은 했으나

아내는 어찌 되었을까?

마음이 다급하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마을 길은 여전히 물에 잠기어 있고

사람들이 아랫도리를 걷고 징겅 징겅 다니는걸 보아 마을이 완전 침수는 아닌 모양이다

 

전봇대가 세워진 길로 자전거가 이끄는 대로 집을 찾아 가니

부엌엔 이미 물이 가득 차서 연탄 아궁이와 부뚜막도 묻히고 물은 방 문턱에 찰랑 거린다

방문을 여니

세상에나``

연탄을 책상 위에 나란히 올려놓고 아내는 연탄 옆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아무 말이 없이 눈에 눈물만 그렁 거린다

아니 피난 안 갔어?”

?”

연탄 젖을까 봐

? 바보같이 연탄이야 사면되지 그러다 진짜 큰물이 지면 어쩌러구?”

당신도 안 오는데 어디 가라꼬?

이젠 비는 안 온다 물 빠지니 괜찮다하며 아내를 끌어 나으니

그제사 무너지며

무서워 죽는줄 알았어~ 엉 엉

괜찮아 이젠 괜찮아” 하며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던 아내가

그런데 당신은 물이 차서 어떻게 길을 찾았어?”

응 자전거가 나를 끌고 왔어

술이 만취된 한밤 중에도 혼자 나를 집까지 끌고 온 자전거 말이다

아내가 피식 웃는다

그런데 여보 국 끓일 불이 없는데 어떻게....”

난 말없이 아내를 다시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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