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치기 창작방

벗어 버리기

김성조 2006. 11. 25. 20:31

 

가을이 막 지나간다 

아파트 그늘이 길게 늘어지는 오후쯤엔 더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휘리릭

방금 떨어진 노란 은행잎이

방금 떨어진 나뭇가지 한번 올려다 보고는

후루룩 굴러간다

미련을 포기한냥 잔디 사이에 엎드려 눈짓도 않는구나

 

나무는 바람을 피하지 않고

애써 낙옆을 떨구어 내고 있다

아름다울때 벗어 버리자고...

그래 벗어 버리자고

저 인간들 처럼 덕지 덕지 걸치지 말고...

 

뜰의 무화과와 석류나무는

노오란 단풍을 늦게 준비한 까닭에

펴보지도 못하고 잘리고 만다

여름내 왕성하게 뻣어올린 가지를 미련없이 내 주었다

 

삼단 같은 긴머리 바람에 휘날리며

다가오던 그녀가

오도리 헵번을 닮겠다고

미련 없이 잘라 버리듯이

나무는 그렇게 저항없이 내 주었다

겨울을 나기엔 몸뚱이 하나면 족하리라고.... 

 

2006.11.26  주택단지 집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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