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사영 백서사건
황사영은 초기 교회의 지도자급 신자 중의 하나로서 창원 황(黃)씨이며
남인(南人)의 명문 출신이다.
부친 황석범과 모친 이씨 사이에서 유복자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1790년(정조 14년) 16세의 어린 나이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했다.
그의 됨됨이와 재주를 높이 산 정조 임금은 친히 그의 손을 붙잡고 격려했으며
이에 그는 손목을 명주로 감고 다녔다고 한다.
명문의 배경과 출중한 재주로 탄탄한 출세의 길을 앞둔 청년 황사영은
학문의 길을 위해 찾아 든 정약종의 문하에서 일생일대의 변화를 겪는다.
혼사를 치른다.
천주교인으로 명도회(明道會) 회장이던 약종은 사영의 빼어난 재능에 반해 장차
교회의 큰 일꾼으로 삼을 것을 다짐한다.
진사시에 합격한 이듬해인 1791년 그는
이승훈에게 천주교 서적을 얻어 보는 한편
정약종, 홍낙민 등과 함께 천주학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나눈다.
결국 천주학의 오묘한 이치에 매료된 그는
알렉산데르란 세례명으로 입교한다.
이로써 그는
부귀 공명이 기다리는 벼슬길을 마다하고
죽음의 길로써 진리를 찾는 고통스런 일생을
선택했다.
그는 주문모 신부가 입국한 직후인
1795년 주 신부를 최인길의 집에서 만난
이래 측근으로 주 신부를 봉행(奉行)하며
명도회의 주요 회원으로 활발한 전교와
신앙생활을 했다.
1801년 신유박해는 수많은 교우들을 희생시켰고 정약종 등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체포됐다.
역시 체포령이 내려진 황사영은
박해의 손길을 피해 서울을 빠져 나와
탐스럽고 아름답던 수염을 깎고
상복으로 갈아입고서
충청도 제천 배론으로 숨어든다.
황사영은 배론의 옹기 가마골에서 숨어 지내며 자신이 겪은 박해 상황과 김한빈,
황심 등으로부터 수시로 전해지는
바깥의 박해 상황에 대해 기록하던 중,
그 해 8월
주문모 신부의 치명 소식을 듣게 된다.
낙심과 의분을 이기지 못한 그는 북경 주교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가는 모필로 명주천에 적는다. 옷 속에 이 비밀 문서를 품고가던 황심이 붙잡힘으로써 백서는 북경 주교에게 전해지지 못한 채 사전에 발각되고
황사영은 9월 29일 체포된다. 이것이 유명한 황사영 백서 사건이다.
백서의 원본은 근 1백여 년 동안 의금부 창고 속에 숨겨져 있다가
1894년에야 비로소 빛을 본다. 뮈텔 주교는 1925년 한국 순교자 79위 시복식 때
이를 교황 비오 11세에게 봉정했고, 현재 백서는 바티칸에 소장돼 있다.
◆ 백서 내용
백서는 흰명주에 가로 62센티미터, 세로 38센티미터, 122줄을 13,384자를
가는 모필로 깨알처럼 곱고 정밀히 써진 것이다.
비록 황사영 자신이 쓴 글이나 자기 이름은 숨기고 황심(토마스) 등이라 했음은
우선 사영의 겸허한 마음의 표현이요, 사영의 판단에 황심이 북경 내왕이 잦고
이미 여러 차례 그곳 주교와 신부들을 만났으므로
누구보다도 신임을 더 받을 것으로 생각한데서 나온 것이었다.
제1부분은 신유년 박해에 순교한 이들 중 중국인 신부 주문모를 필두로
30여 명의 빛나는 사적을 열거하고,
제2부분은 박해의 동기와 원인이 벽파와 시파의 골육 상잔의 당쟁(黨爭)이었음을
필역하고,
제3부분은 빈사 위기에 처한 교회의 희생과 동족학살의 구원책으로
외세에 원조를 청하는 등 자신의 사견을 진술하였다.
◆ 황사영 백서(黃嗣永 帛書)
罪人多黙等 涕泣呼 干 本主敎大爺閣(閤)下 客春行人利旋 伏聞氣 候萬安 日月馳 歲色垂暮 伏未審 內更若何
죄인 토마스 등은 눈물을 흘리며 본주교 대야 (湯士選 구베아) 각하께 호소합니다. 지난 봄에 길 떠났던 사람 편에 각하께서 건강하게 잘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마는, 세월이 지나 벌써 해가 다 저물어 가는데,
그 동안은 또 어떻게 지내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伏惟賴 主洪恩 神形兼佑 德化日隆 望風馳慕 不勝 賀
엎드려 생각하건대, 각하께서는 주님의 넓으신 은총으로 영육간에 건강하시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덕화가 나날이 융성하시기에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며, 기뻐하여 하례 드리는 마음 이기지 못할 듯 합니다.
罪人等罪惡深重 上干主怒 才智淺短 下失人謨 以致窘難大起 禍廷神父 而罪人等又不能臨危捨生 偕師報主
저희 죄인들은 죄와 악이 깊고 무거워 위로는 주님의 노여움을 샀으며,
재주와 지혜가 얕고 짧아서 아래로는 다른 사람의 헤아림을 잃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박해가 크게 일어나 그 화가 신부에게 (주문모) 미치게 하였습니다. 저희 죄인들은 또한 위태로움에 임하여 목숨을 버려 스승과 함께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였으니,
復何面目 濡筆而仰訴乎 第伏念 聖敎有顚覆之危 生民罹溺亡之苦 而慈父已失 攀號莫逮 人昆四散 商辦無人
다시 무슨 면목으로 붓을 들어 우러러 호소하겠습니까? 다만 엎드려 생각건대
성교가 뒤집혀 엎어질 위험이 있고, 백성이 박해에 걸려 죽을 고통 속에 있는데도 자애로운 아버지를 잃어 붙들고 호소할 데도 없으며,
어진 형제는 사방으로 흩어져서 모든 것을 헤아려 주관할 사람이 없습니다.
惟我大爺 恩兼父母 義重司牧 必能憐我救我 疾痛之極 我將呼誰
각하께서는 은혜로운 부모를 겸하셨고, 의리로는 사목의 무거운 책임을 지셨으니, 반드시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지극한 괴로움에 저희는 장차 누구를 불러야하겠습니까.
玆敢 奏窘難顚末 而 釀已久 端緖頗多 一筆難述 故具在左方 伏望哀憐而照察焉
이에 감히 박해의 전말을 대략 아뢰고자 합니다. 일이 시작된지 이미 오래고
실마리가 하도 많아서 간단히 말씀드리기가 어려우므로 다음에 자세히 적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시고 굽어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方今敎務 板蕩無餘 惟獨罪人倖免 若望不露 或者 主恩未絶於東國歟
이제 교회가 무너져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데,오직 죄인만이
요행히 화를 면했고, 요한도 (옥천희 : 若望) 들키지는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은총이 아직 우리나라에서 아주 끊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嗚呼死者旣損生以 敎 生者當致死以衛道 然才微力薄 不知攸爲
아! 죽은 사람은 이미 목숨을 버려 성교를 증명하였거니와,
살아 있는 사람은 마땅히 죽음으로써 진리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재주가 미약하고 힘이 부족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密與二三敎友 商量目下事宜 披腹條奏 伏望 閱覽之餘 哀比 獨 速施拯救
몰래 두서넛 교우와 (황사영, 황심, 옥천희) 당면한 일을 깊이 생각하여
저희 복안을 조목조목 나누어 아룁니다.
읽어보시고 의지할 곳 없음을 불쌍히 여기시어 빨리 저희를 구해주시기 바랍니다.
罪人等如群羊之走散 或奔竄山谷 或棲遑道路 莫不飮泣呑聲
저희들은 마치 양떼가 달아나 흩어진 것처럼 혹은 산골짜기로 도망쳐 숨고,
혹은 몸둘 곳이 없어 길바닥에 헤매면서
눈물을 머금고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며 흐느낍니다.
酸心通骨 而晝宵盼望者 惟上主全能 大爺洪慈 伏望誠求主佑 大施憐憫 拯我等於水火之中 措我等於 席之上如今
괴로운 심정이 뼈에 사무쳐, 밤낮으로 바라는 것은 주님의 전능하심과
각하의 넓으신 사랑뿐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주님의 도우심을 정성으로 기구해 주시고 연민의 정을 크게 베푸시어,
저희들을 이 모든 환란에서 구원하시어,
저희들로 하여금 편안한 자리 위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聖敎已遍天下 萬國之人 無不歌詠聖德 鼓舞神化 而顧此左海蒼生 孰非上主赤子
이제 성교가 이미 천하에 두루 전파되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성덕을 노래하고
하느님의 교화에 북을 치며 춤추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左海] 백성들은 돌아보건대,
어느 누가 주님의 자녀가 아닌 이가 있겠습니까마는,
地方避僻 聞敎 晩 氣質孱弱 耐苦狼難 而十載風波 長在淚泣憂愁之中 今年殘害 更出夢寐思想之外
지역이 멀고 후미져서 가장 늦게 성교를 들었고, 기질이 잔약하여
괴로움을 견디기가 매우 어려워 십 년 풍파에 늘 눈물과 근심 가운데 있었는데
금년의 잔혹한 박해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이 나타난 일이었습니다.
哀我人斯 胡至此極耶 此難之後 無特恩 耶蘇聖名 將永絶於東土
참으로 가엾습니다. 어찌 이러한 지경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이번 교난이 있은 후에 아직 특별한 은총이 없어,
예수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이름이 장차 이 나라에서 아주 끊어져 버리려 합니다.
言念及此 肝 裂 中西敎友先生們 聽此危苦之情 寧無惻然傷心乎
말과 생각이 이에 미치니 간장이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중국과 서양의 교우 선배들이 이 위태롭고 괴로운 사정을 들으면,
어찌 불쌍히 여기고 마음 아파하지 않겠습니까?
敢望敷奏敎皇 布告各邦 苟可以救援吾 者 靡不用極 吾主博愛之恩 顯聖敎同仁之義 以副此切望之誠
감히 바라건대, 교황께 자세히 아뢰시어 각국에 널리 알리시고,
진실로 저희들을 구원할 수 있는 일은 모두 강구하시어,
우리 주님의 넓은 사랑의 은총을 본받아,
성교에서 가르치는 바대로 모든 이를 두루 사랑하시는 뜻을 드러내어,
저희의 이 간절히 바라는 정성에 보답케 하여 주십시오.
罪人等 心揮涕 哭訴衷情 引領翹足 專候福音 惟我大爺 千萬可憐我 書不盡意
저희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눈물을 흘리면서 어려운 사정을 호소하고,
목을 늘이고 발돋움하여 오직 기쁜 소식이 있기만 기다립니다.
우리 주교 각하께서는
부디 글로써 다 아뢰지 못하는 저희들을 가련히 여겨 주십시오.
自乙卯失捕後 先王疑 日深 潛譏密察 未嘗少間 而終不知神父 跡
을묘년에(1795) 주문모 신부를 체포코자 하다 놓쳐 버린 후부터
(한영익의 고발로 주문모 신부가 잡힐뻔한 일)
선왕(正祖)의 의심과 두려워함이 날로 더하여, 잠시도 멈추지 않고 철저하게
기찰을 하였으나 아직 신부에 관해서 조그마한 소식을 듣지 못하였고,
끝내 신부의 종적도 알아내지 못하였습니다.
乃使趙和鎭者 假托奉敎 探之湖中(忠淸道之別名)事情
그리하여 조화진이라는 자를 시켜,
거짓으로 성교를 믿는다 핑계하고 호중의 (충청도의 별명) 사정을 탐지하게 하여
遂有己未冬淸州之窘 湖中熱心敎友死亡 盡
마침내 기미년(1799)
겨울 청주의 박해가 일어나 충청도의 열성적인 교우들이 거의 다 죽었습니다.
崔多黙必恭者 中路人也 性直志毅 仗義疎財 熱心 盛 有卓 不 之風 辛亥之窘 不幸被誘背敎
최필공 토마스 (多黙 1745∼1801 순교자) 형제는 중인으로,
성품이 곧고 의지가 굳세며, 의로움에 의지해서 재물을 멀리하며,
성교에 대한 열성이 지극하여 일반 사람과 다른 뛰어난 풍모가 있는데 불행히
신해년(1791)의 박해 때 (전라도 전산에서 일어난 윤지충의 사건을 말함)
잡혀서 유혹에 빠져 성교를 배반하였습니다.
先王甚喜之 爲之娶妻拜官 多黙不得已順受 近年家居 深痛往失 常思損軀補贖
선왕은 몹시 기뻐서 그를 장가들게 하고 벼슬을 주니,
토마스는 하는 수 없이 순종하여 그대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근년에 와서는 집에 들어앉아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통감하며
항상 몸을 바쳐 보속할 것을 생각하였는데,
己未八月 先王忽然招致刑曹 問 尙奉邪學否 多黙適中所願 自分必死 遂直陳聖敎忠孝之理 自己痛悔之情
기미년(1799) 8월에 선왕이 갑자기 형조로 불러들여,
"네가 아직도 사학을 신봉하고 있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토마스는 이 때야말로 자기가 바라던 대로 성교를 위해 죽을 때라고 여기고,
마침내 성교의
충효의 이치와 자기가 뼈아프게 뉘우치고 있는 심정을 분명하게 말하였습니다.
所言光明俊偉 感動旁聽 而刑官駭憤殊甚 據辭上聞 先王不復加刑 困循放釋
그의 말은 빛나고 위엄이 있어, 옆에서 듣는 사람들을 모두 감동시켰습니다.
그러자 형관은 몹시 놀라고 성이 나서 그대로 임금께 아뢰었는데,
선왕은 다시 더 형벌을 가하지 않고 머뭇거리다가 그냥 석방하였습니다.
臺臣抗疏請誅 亦 糊賜批 頗示包容之意 事遂寢
그러자 대신이 항의하는 상소문을 올려 토마스를 사형시킬 것을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왕은 역시 모호한 대답을 내려서, 자못 그를 포용하는 뜻을 보였기에,
일은 그 정도에서 가라앉았습니다.
李瑪爾定中培者 少論一名也(士夫妾子孫謂之一名) 居京畿道驪州 勇力絶倫 志氣豪快
이중배 마르띠노는 (瑪爾定 ?∼1801 순교자)
소론의 일명으로, <一名 : 사대부 첩의 자손을 말함>
경기도 여주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용맹과 힘이 월등히 뛰어나고 의지와 기개가 호쾌하였습니다.
素與金健淳爲生死之交 及健淳奉敎 瑪爾定亦信從領洗 熱心如火 明目張 而行 不 人知覺
전부터 김건순과 (요사팟 若撤法 1775∼1801 순교자)
생사를 같이할 만큼 친하게 사귀어 왔는데, 건순이 교를 믿어 받들게 되자
마르띠노 역시 믿고 순종하여 영세를 받았습니다. 그는 불꽃같은 열성으로 믿으며, 눈을 바로 뜨고 대담하게 행동하여, 남들이 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庚申復活占禮 煮狗 酒 與同里敎友 會坐路邊(山僻小路) 高聲念喜樂經擊匏樽按節 歌竟飮酒嚼肉 飮訖復歌 如是終日
경신년(1800) 부활절에는 개를 잡고 술을 빚어 가지고, 한 동리 교우들과 함께
길가에 <산골 작은 길> 모여 앉아서 큰소리로 희락경을 (희락삼종 : 부활삼종기도) 외우고, 바가지와 술통을 두드려 장단을 맞추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가 끝나면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고 나서는 다시 노래를 부르고, 이렇게 해가 다 저물도록 계속하였습니다.
未幾爲仇家所告 與同友十一人 被捕到官 友中亦有弱者 皆賴瑪爾定鼓動勸勉之力 屢經毒刑 一幷堅固 遂拘囚不放
얼마 뒤에 원수처럼 지내는 가문의 고발로 그는 교우 열한 사람과 함께 체포되어
관청으로 끌려갔습니다. 교우 중에는 마음이 약한 사람도 있었지마는,
모두 마르띠노의 격려하고 권면하는 힘에 의지하여,
여러 번 지독한 형벌을 겪으면서도 한결같이 굳게 버티어,
결국은 석방되지 못하고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瑪爾定本來 知醫術 而不甚精工 入獄後 或有問疾者 則先求主佑 後施鍼藥 莫不 愈
마르띠노는 본래 의술을 조금 알고 있었으나 그다지 깊지는 못했는데,
옥에 갇힌 후에 혹 와서 병에 대해 묻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주님의 도우심을 기구하고,
그런 다음에 침을 놓고 약을 쓰게 하여, 낫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從此聲名大播 遠近輻輳 獄門如市 本官不能禁 自己有病 還來問藥 因此獄中日用不
이로부터 그의 명성이 크게 퍼져서 멀고 가까운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옥문 앞이 저자를 이룰 정도였습니다. 그 고을 군수는 이것을 막지 않았고,
자기도 병이 있어 와서 약을 물으니,
이로 인해 옥중에서도 날마다 쓰는 것에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金健淳嘗言 人或問瑪爾定療病之能 名稱之太籍 答以爲十之八九 然其實十之十 百之百 無一不效
김건순은 일찍이 말하기를, "남들이 혹 마르띠노에게 병 고치는 능력을 물으면
칭찬이 너무 지나치다고 하지 않을까 두려워서 열에 여덟 아홉은 고친다고
대답하지마는, 실상은 열이면 열, 백이면 백,
한 사람도 효험을 보지 못하는 이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獄吏求見醫方 答曰我無方書 只是恭敬天主 汝欲學醫 亦當信主 吏曰書冊已盡燒 從何而學 瑪爾定笑曰 吾胸中不 之書 猶足以誨人奉敎
옥리가 의서를 좀 보자고 하였으나 그가 대답하기를
"내게는 의술을 적은 책이 없소. 다만 천주님을 공경할 뿐이오.
당신도 의술을 배우려거든 마땅히 주님을 믿으시오"하였습니다.
그러자 옥리가 다시 "책들은 다 불태워 버렸는데 어찌 배울 수 있단 말이오?"
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마르띠노가 웃으면서 "내 가슴속에 있는 없어지지 않는 책으로
족히 남들을 가르쳐서 교를 받들게 할 수 있소"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同囚之元若望 有一老婢 常來須視 陳說家中情景 反覇誘說 若望不爲動
함께 갇혀 있는 원요한에게 (元景道 1773∼1801 순교자) 한 늙은 여종이 있었는데, 늘 옥에 와서 그의 옥바라지를 하면서 집안 사정을 늘어놓고는
성교를 그만 두라고 거듭 말하며 꾀었으나 요한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有一次語甚酸切 若望有戚戚之意 瑪爾定 視之 老婢 不敢畢其說而退 後遂不往曰 李生員眼光可畏 不能復往矣
한 번은 여종의 말이 하도 간절하여 요한이 집안을 걱정하는 기색이 나타나므로
마르띠노는 그 늙은 여종을 노려보았습니다.
늙은 여종은 두려워 감히 말을 마치지 못하고 물러가,
그 뒤에는 다시 옥에 가지 않고 "李생원님의 눈빛이 무서워서 다시 못 가겠다."고 했습니다.
獄中常 書念經 講道勸人 獄卒一人 動心信從 亦爲熱心之人
李마르띠노는 옥중에서도 늘 책을 베끼고 경문을 외며,
진리를 해설하여 남들에게 교를 믿으라고 권하였는데,
옥졸 한 사람은 마음이 움직여 성교를 믿고 따라서 열성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