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금정산과 금정산성(2006.10.01)

김성조 2006. 10. 4. 13:42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

 

자 여러분 따라 해보세요

전사이 가도난

염의장이 선창을 한다

~~ 전사이 가도난

여자 몇분이 들릴락 말락 하는소리

다시한번, 전사이 가도난

목소리가 좀더 많아지면서

전사이 가도난~~

여기서 가도난은 길을 빌려준다는 의미보다 원칙을 버릴수 없다고 해석 합시다

부산 금정산을 향하는 차 안은 역사공부가 한창이다

킬리만자로 산학회(山學會)가 그 학(學)을 하고 있다 ^^

 

오늘 우리가 등정할 금정산은

임진왜란시 동래부사 송상현이 목숨바쳐 한나절도 못지키고 함락된 동래읍성의 뒷산이다

부산의 진산(鎭山) 이라는데, 부산을 지키기나 하였는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은 ‘길을 빌려 달라’는 일본군의 요구에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싸워 죽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길을 빌려 줄 수는 없다)’이라고 답한 뒤 장렬하게 전사했다.

하지만 이제 이 표현은 고쳐져야 할 듯하다.

‘싸워 죽는 일은 쉬운 일이다. 오히려 미리 헤아려 대비하는 일이 더욱 어려운 일이다.’

"전칙전의 부전칙 가아도(戰則戰矣 不戰則 假我道)"
왜장이 이런 글을 보내왔다. 싸우고 싶거든 싸우고 싸우기 싫거든 길을 빌려달라는 뜻이었다.
동래성 병사 이각(李珏)이 중과부적에 놀라 달아나려하자 대의(大義)로 꾸짖으며 사수(死守)를 도모했으나 결국 도망치고 말아 부사인
송상현
이 서둘러 병사들을 단속하며 항전의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1592년 4월 15일 오시(午時)에 성은 함락되었다.

군을 책임진 지역사령관이 도망을 가고, 행정을 책임진 부사가 전쟁을 한것이다

 

금정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혼쭐이 난 후인 숙종 29년(1703)에 국방에 대한 새로운 인식 속에서 해상을 방어할 목적으로 축성된 것이다.

성은 내.외성으로 이루어졌고 성벽은 자연석으로 쌓았지만 중요한 부분은 가공한 무사석으로 쌓았으며, 성의 길이는 17.337m이고 높이는 1.5 내지 3m 정도이며 면적은 약 8.213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성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된 것을 1972년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동.서.남문을 복원하였으며, 1989년 북문을 복원하였다.
그 이후도 태풍등에 자주 파손되어 보수가 잦으니 누각이나 문들의 모습이 고풍스럽지 못했다

대게의 산성들이 유적지로서 보존을 하고 있지만, 부산의 금정산성 4대문안에는 실제로 금성동 이라는 마을이 있다

옛날에는 염소농장을 하고 있어 산성막걸리와 흑염소구이에 동래파전이 유명세를 탔는데 지금은 어떠한지 모르겠다.

동래파전을 먹어 볼수나 있을지….

 

 

40명을 채운 우리의 차량은

10월 초하루의 두터운 햇살을 받으며, 7시반 중마동을 출발하여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남해고속도를 달린다

김해평야!

이제는 더이상 식량의 보고가 아니다

비행장이 차지하고,아파트와 공장들이 잡아먹고, 그나마 남은곳은 특용작물 위주다

그 끝없던 김해 평야는 이제 답답한 도시로 변하고 있다

흐르지 않은듯 흐르는 낙동강만이 가락국의 그 찬란한 역사를 알고 있을터

 

오늘의 산행들머리는 만덕터널위 만덕동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길은 넓게 나 있는데도 등산객이 안보인다

그것은 석불사 가는 길목에서 이쪽 구간이 금년 7월부터 휴식년제로 들어섰다는 안내를 보고야 알았다

이미 들어선길 어쩔수 없이 석불사로 향한다

병풍암 석불사는 그야말로 돌로지은 절이다

별랑끝에 절기둥도 대들보도 돌이다

또한 뒤에 자연석 절벽에 멋진 솜씨로 부처님과 보살과 나한들도 새겨놨다

50년전에 지은걸 보아 조각솜씨는 아마도 그 후에 기계로 했을터,

그래도 작가의 감각이 없고서야 어찌 이런 작품이 나올까 싶도록 정교하다

 

 

 <건물 재료가 모두 돌로 되었다>

 

 

 

 

 

석불사에서 조금더 오르면 약 600고지 정도에서 높이로서의 산행은 끝이고 산성을따라 약 10킬로를 항도 부산과, 억새를 조망하며,

돌담아래의 쑥부쟁이의 쑥스러운 자태도 훔쳐보며,

산성이라서 했볕노출을 염려 했으나 이외로 숲길이 많아

산행은 그야말로 산책하는 기분으로 한다

하산후 해운대 해수욕장이 예약되어 있어 조금은 서두르게 된다

<누가 올려 놨을꼬?>

 

<암벽을 타는 크라이머들>

<억새꽃이 눈이 내린듯하다>

 

 

항도부산: 멀리 관안대교가 보인다 

 

이러하니 등산왔다가 살이 찌지 ^^ 

 

남문: 아이스케이크 죽음의 맛 ^^

 

 

 

<쑥쓰러운 쑥부쟁이: 그래도 보시고 가시라요^^> 

 

 

<원효암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산성길: 배낭메고 있는팀은 우리밖에 없다^^> 

 

 촛대바위:누구를 위하여 촛불을 켤것인가?

 

동문을 향하여... 

 

 

 

 

<억새는 노래하고..> 

 

<북문: 범어사로 내려 서는길> 

 

<저기가 정상 고당봉> 

 

 

 

 

 

14:20분경 북문도착

여기서 오늘의 목적지 금정산(801) 정상으로 가는 팀과 범어사로 바로 내려가는팀을 나누게 되는데

이외로 바로 내려가서 해운대에서 시간을 즐기자는축이 많아

몽땅 그쪽으로 결론이 나는듯 했으나

오로지 정상을 바라보고 여기까지 온 이들을 생각하면

아침에 읊은 가도난(假道難)을 “원칙을 무시하기는 어렵다”라고 해석을 한 우리로서는 그 원칙을 지킬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다

 

금정산(801.5)은

태백시 금대산에서 갈라진 낙동정맥이 양산 통도사 영축산에서 개울을 훌쩍건너 뛰드시 지경고개를 간신히 건너 정족산에서 다시 이어져 원효산을 거쳐 부산에서 가장높은 산을 이룬다

차라리 낙동정맥은 영축산에서 그대로 물금까지 내려가서 낙동강으로 빠지는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하자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금정산의 촤고봉 고당봉(姑堂峰) 천신인 고모할머니가 내려와 산신이 되었다해서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고대의 신선사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지금도 정상부근에는 고모당(姑母堂)이라는 기도처가 있다. 금정산에서 고당봉이 최고봉이며, 가슴께에 용머리 형상의 용두암이 있고 남쪽 산허리쯤에는 고당샘이 있다. 동쪽 능선 허리에는 범천(梵天) 금어(金魚) 오색 구름을 타고 내려와 살았다는 금샘(金井) 있어서 금정산(金井山) 범어사(梵魚寺)라는 이름의 연원이 되었다고 한다.

 

어차피 팀이 갈리고 보니

정상팀은 돌격대가 될것이 뻔할터

나는 아쉬움을 남기고 범어사로 내려선다

범어사는 이쪽 사람들의 유명한 아베크 코스

옛날에는 팔송정에서 걸어 올라 왔건만 지금은 절아래 까지 주차장이 설치되어 있다

이동거리 12km 5시간 소요

 

범어사:

우리나라 31본산의 하나.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라 최성기때에는 계곡에 당우들이 가득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에 고스란히 불타버린 중창되었다. 대웅전은 조선중기 불전건물의 건축적 가치때문에 보물 434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면 3, 측면 3칸의 다포계건물. 범어사에는 신라 흥덕왕때의 것으로 보이는 3층석탑이 보물 250호로 지정되어있다.

범어사가 부자절 일것이라는건 부산아지매들 회색 몸빼를 보면 알수 있지만

건물들도 부처님을 모신곳보다 손님을 맞는 요사채가 훨씬 크고 많다

 

정상팀이 내려온 15:20 해운대로 향하다

 

<역시 데이트 족이 많군^^>

 

 

보물 105호 삼층탑> 

 

헌건물이 부처님 모신곳, 새기와집이 손님 모시는곳 ^^> 

 

 

이 돌구멍의 용도를 알았다>

 

<훌륭한 데이트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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