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가는 가을과 벗이 그리운 두륜산, 그리고...(2006.11.19)

김성조 2006. 11. 20. 15:49

 

 

"오늘 아침
 안개비 따라
 봄 마저 가 버리고
 너를 떠나보내고
 석양 하늘가를
 쳐다보는데
 꽃을 떨군 줄기는
 앙상하게 남아있고
 줄기에서 떨어진 꽃잎은
 잠이 들었다"

 

그대 보내고 고개 돌린 석양의 하늘 마음은 안개 가에 아득히 젖는데

오늘 아침 그 안개 따라 봄마저 가고 빈가지 쓸쓸히 꽃잎 떨구고 잠드네.

참 가슴이 찡한 시 입니다.

 

추사가 초의와 교유하기 시작한 것은 동갑인 두사람의 나이 서른살때

한분은 도성출입이 금지될 정도로 천대받던 스님이고

또 한 분은 당대의 대감인데

신분격차를 뛰어넘어 한 평생 뜨거운 교류를 주고 받는다.

파란만장한 삶의 전주로 추사가 제주도 유배길에 오르자

초의는 슬픔을 시로 달랜다.

 

오심재,

여기가 초의가 추사를 마지막 전송하고 눈물 지었을 그 장소가 아닐까 싶다

대흥사 에서 해남으로 넘어가자면 이고개가 가장 낮고 빠를 것 같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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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중순의 늦단풍 산행

예년 같으면 첫눈 산행을 준비하여 할 절기 이건만

시절이 하 요상하여 노란은행잎이 나풀거리는 남도길을 소풍가듯 간다

모두들 가는 가을이 아쉬웠을까

인원은 정원을 한두명 초과할 정도로 만원사례

 

강진-해남

바로 남도답사의 일번지 아닌감

다산의 숨결이 살아 있는 만덕산을 끼고 돌아

호남의 용아장릉 덕룡산-주작산을 바라보며,

초의, 추사, 그리고 서산대사가 어우르는 해남 대흥사가 있고

고고한 학자 고산 윤선도의 고택이 있는. . . .

 

우리 염의장

해설에 신바람 난다

대충 훑으며 지나가도 벌써 1시간째

언제나 즐거운 킬리 역사공부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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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가 수돗물 처럼 콸콸 나오는 오소재에서

물받는 사람들이 십리도 넘게 늘어져 있어, 한 바가지 얻어 마시지도 못하고 입산이 시작되어

촉촉한 낙엽을 밟으며 오르기를 40여분

케이블카가 있는 고계봉과 노승봉 사이의 안부 오심재에 오른다

바로 내려가면 대흥사로 이른다 하니 어쩜 이길을 통하여 대흥사 스님들이 탁발 나설때나

완도 지방의 섬사람들이 해남읍으로 갈 때 이고개를 넘다 여기서 쉬어 갔으리라.

그래서 주막도 있었을것 같고.

 

그렇다면,

이 고개에서 추사와 해어진 초의가 벗과 이별의 시를 읊었을까 싶어

나도 어디 같은 심정으로 남도의 바다를 바라본다

고산 윤선도가 바다를 메꾸어 농토를 넓혀 농민들을 잘살게 해 주었다는(양반들 배 먼저 채우고)

강진만의 간척지는  추수가 끝난 들은 조용히 엎드려 있고

멀리 다도해의 섬들이 어깨를 마주안듯 옹기종기 모여 가을의 따뜻한 해 바라기를 하고 있다

 

오심재 에서 정상부 암반을 오를 팀과 우회하는 팀을 나누어 출발한다

두륜산(頭輪)의 유래가 중국에서 따온 이름이겠지만

머리에 톱니바퀴 처럼 정상부 봉우리가 빙 둘러져 있다해서 붙혀진 이름 이라는 설도 있는데...

그 가운데 오늘 우리가 거치는 봉우리가 노승봉(688)과,가련봉(703) 그리고 두륜봉(630).아래에서 볼때는 하나의 바위덩이로 보이나

등산로가 이바위를 모두 오르도록 되어 있어 밧줄을 타고 오르 내리는 유격장이 된다. 마치 팔영산의 여덟 봉우리 처럼...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황금 숲속의 대흥사나 해남 완도의 바다는 글이 짧아 표현을 다 못하겠고,기술이 부족하여 사진으로도 표현이 안되니 한번 가 보시라 할 밖에...

 

그야말로 삼색 밸트라 했다

젤 위는 암반 밸트,

가운데가 단풍벨트,

젤 아래가 상록수 벨트

이 시기가 아니면 어찌 이런 경치를 볼꺼나

암반 등반과, 좌우로 바다와 섬, 그리고 단풍구경을 한방에 해결하면서 제2의 안부 만일재에 모여 점심을 든다.

 

하산길은 천년을 더 살았다는(1200~1500년) 천년수(樹)와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 북미륵암을 거쳐

초의선사가 중건하여 말년까지 은거하시며 사상과 철학을 집대성하고, 차문화를 펴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저술하신 일지암에 이른다.

 

일지암은 한간짜리 초가이다

선사께서 입적하시고 화재로 소실 되었으나

113년 지난 1979년에 차를 사랑하시는 이들의 뜻으로 복원 하였다 한다

고증을 위하여 문헌과 화첩을 참조하여 옛 터를 찾아 원지줏돌위에 목재도 고가를 헐어 지었다 하니

다(茶) 문화의 성지라 할 만 하다

"뱁새는 항상 한마음으로 살기 때문에 나무 한가지에만 있어도 편하다"는

한산시(寒山詩)의 일지(一枝)를 따 일지암(一枝庵)이라 부른단다.

 

대청마루에서 스님인지 나그네 인지는 모르는 두분이 차를 다려 마시며 담소를 정겹게 보였으나,차마 마주대고 찍지는 못하고 은근설쩍 집어 넣어본다

마당 한켠에는 찻물로 쓰일것 같은 물이 넘치고 있다.

 

 

 

 

일지암에서 대웅전으로 내려가는 길은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제 막 단풍이 절정을 이룬듯 상록수의 푸른색이 조화를 이루어 가히 환상적이다.

마침 내앞에 가는 남녀 회원이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는 폼이 너무 아름다워 한컷 하였더니 신문(?)에 나면 앞으로는 킬리에 못 온다고 ^^

ㅋㅋ 별걸다...

 

 

 

 

 

 

 

정조대왕이 �다는 표충사(表忠祠)와

원교 이광사가 썼다는 대웅보전(大雄寶殿)

김정희가 섰다는 무량수각(無量壽閣)이 함께 어우르는 서예 박물관,

이밖에 서산대사, 초의선사의 유물박물관 등 아는것이 없어 다 둘러보지 못하고

봐도 모르는 이 생뚱맞은 나그네는 그저 대흥사 샛노란 단풍잎만 찍고 있다.

 

 

 

대흥사에서 주차장 까지 이르는 길은 약 2km의 숲길로도 유명하다

차량통행이 허용되어 호젓한 산책의 흥이 깨지기는 하였지만

숲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가을 햇살은 단풍잎을 한결 곱게 빚어주고 있다

이런길은

등산복이 아닌, 긴치마에 체크무늬 소올을 걸치고 부츠신고 걸어야 제맛이라는 우리 총무님 말처럼 그러한 쌍 들이 더러 눈에 띄어 숲길을 더욱 멋내고 있다

 

공원입구에서 대흥사 부처님을 만나려면 아홉게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데 반대로 내려 오면서 확인해 보니 7개 뿐이다

2개는 어디 있는고?

아마도 내 두 다리가 그것을 대신 하라는 의미인지??

다시 확인 할까 하고 뒤로 돌아보니

석양을 이고 있는 두륜산 봉우리가 빙그레 웃고 있다

넌 아직 멀었는 니라....